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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력의 발전과 분업의 증대가 미친 영향

생산과 분업의 발전

 

정복 및 전쟁을 통해 획득한 포로를 노동력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이 양자의 결합 과정은 역사상 최초로 대체하고, 생산 수단의 소유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지위를 차지하는 계급을 발생시켰다. 또 다른 한편에서 정복 및 전쟁을 통해 사상 최초로 적대적 계급 사회인 고대 노예제 사회를 이루었고, 이 적대적 계급 사회의 발전은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를 형성하였다. "서로 투쟁하는 이 사회 계급들은 어느 시대나 생산관계 및 교환 관계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 시대의 경제적 관계의 산물이다." 엥겔스의 설명과 같이 경제적 관계의 산물인 사회 계급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므로 계급의 폐지 또한 더욱 고도한 생산력 발전에 의해 가능해진다. 엥겔스의 또 다른 설명을 경청해보자. "즉 바로 오늘까지의 역사상의 모든 착취 계급과 피 착취 계급,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사이의 대립은 이와 같이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인간 노동의 생산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실제로 노동하고 있는 주민이 그들의 필요 노동에만 매달려 사회의 공동 업무 노동의 관리, 국가 업무, 법적인 문제, 예술, 과학 등등을 돌볼 시간이 없는 한, 현실적 노동에서 해방되어 이런 업무를 전담하는 특수 계급이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외 없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근로 대중에게 더욱더 많은 노동을 부과하였다. 오직 대공업이 창출한 생산력의 엄청난 증대 만이 사회의 모든 성원에게 예외 없이 노동을 할당하고, 그럼으로써 각각의 개별 구성원의 노동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켜 모두가 사회의 전반적인 이론적이든 실천적이든 업무에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오늘날에야 비로소 모든 지배 및 착취 계급이 쓸모없게 되어 실제로 사회 발전의 장애물로 전락했다.

 

자주적 유물론자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규명함으로써 실천의 지침이 되고 있는 사적 유물론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주적 유물론자는, 사적 유물론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한다. “새로운 사상은 둘째, 사회 역사 운동의 본질은 '인류 역사는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적 유물론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계급투쟁을 역사 발전의 동력으로 설명하나 여기에 기초한 5단계 사회 발전론은 새로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부르주아 사상 이론가들이 흔히 제기하는 것으로서 '생산력 생산 관계의 모순이 해결되고 계급이 소멸되는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역사 발전의 동력은 사라지게 되고,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되는가?'라는 문제다. 사회의 기본 모순을 생산력 생산관계의 모순, 계급 모순으로 설정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주성 (을 지향하는 욕구)과 그 자주성의 실현을 억압하는 것 사이 모순으로 볼 때 이 문제는 정확하게 해명될 수 있다. "자주적 유물론자는 부르주아 사상이론가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자랑스러움에 도취해서 사직 유물론의 근본 사상으로부터 멀리 달아났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 인간의 자주성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새로운 명제를 제출한다. 과연 자주성의 실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다음 글에서 그들의 설명을 계속 들어 보자.